부모들은 종종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며 궁금해한다.
"왜 사람을 이렇게 이상하게 그릴까?"
"왜 태양을 보라색으로 칠했을까?"
"왜 가족 그림에서 아빠를 안 그렸을까?"
그림검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림 속 상징을 해석하는 방법에 먼저 관심이 가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아이의 발달 수준이다.
아이의 그림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생각하는 수준, 그리고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이다.
아이의 그림은 어른의 그림과 다르다
어른은 눈으로 본 것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반면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
그래서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그림이 오히려 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섯 살 아이가 사람을 동그라미 하나에 팔과 다리만 붙여 그렸다고 해서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 나이에 가능한 방식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한 결과일 수 있다.
그림을 해석할 때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그 나이에 기대되는 발달 수준에 맞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1단계 : 낙서도 의미가 있는 시기 (18개월~3세)
이 시기의 아이들은 종이, 벽, 책을 가리지 않고 선을 긋기 시작한다.
어른의 눈에는 무의미한 낙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한 발달 과정이다.
손을 움직이면 선이 생긴다는 것을 배우고,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 그림이라기보다는 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2단계 : 그림에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 (3~4세)
이 시기의 그림은 여전히 단순하다.
그러나 아이에게 물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이 보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선 몇 개일 뿐인데 아이는 그것이 자동차이고, 엄마이고, 놀이터라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는 그림보다 아이의 설명이 더 중요하다.
상징적 사고가 발달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3단계 : 사람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 (4~6세)
많은 부모들이 가장 흥미롭게 보는 시기다.
이른바 '올챙이 인간'이 등장한다.
동그란 머리에 팔과 다리가 바로 붙어 있는 단순한 형태다.
어른 눈에는 어색하지만 발달적으로는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 눈썹, 손가락, 귀와 같은 세부 요소가 추가된다.
또한 집, 나무, 꽃, 태양처럼 자주 접하는 사물에 대한 자신만의 그림 공식을 만들어 간다.
흥미로운 점은 색깔 사용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파란 소, 보라색 태양, 초록색 사람도 거리낌 없이 그린다.
현실과 다르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이 살아 있는 모습일 수 있다.
4단계 : 세상이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 (6~9세)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 되면 그림은 훨씬 복잡해진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공간 표현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고, 집 뒤에 나무가 있으며, 하늘과 땅이 구분된다.
원근감과 깊이를 표현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또한 중요한 대상을 크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을 집보다 크게 그렸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5단계 :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지는 시기 (9~12세)
이 시기 아이들은 "진짜처럼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진다.
사물의 비율, 원근감, 색깔을 현실과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이전 시기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조금 줄어들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시기에 그림 실력에 대한 비교를 경험한다.
"나는 그림을 못 그려."
"친구가 더 잘 그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림 자체를 멀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소년기의 그림
청소년이 되면 그림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담는 도구가 된다.
어떤 청소년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표현하고, 어떤 청소년은 사회에 대한 생각이나 꿈을 담아낸다.
특히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경우에는 이 시기에 표현력이 크게 성장하기도 한다.
그림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림을 해석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단편적인 상징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작게 그렸다고 해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을 크게 그렸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것도 아니다.
그림은 아이의 발달 수준, 성격, 경험, 현재의 정서 상태가 함께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는 "무엇을 의미할까?"보다 "이 아이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까?"를 먼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그림은 정답을 알려주는 검사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을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신민섭 외.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 HTP와 KFD를 중심으로』.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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