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 되세요.
여자의 집은 ㄱ자 골목의 제일 끝에 초록색 나무로 된 대문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물론 대문 색깔은 그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페인트칠을 할 때마다 바뀌었다). 한옥주택이라 기와지붕에 안방, 작은방 2개, 마루, 부엌, 다락이 있고, 자그마한 옥상 위에는 여러 개의 장독들이 놓여있었다. 마루에 서서 앞을 보면 성인 걸음으로 두어 보폭 정도 되는 토방과 그에 이어지는 마당, 그리고 대문 쪽에서 제일 안쪽 작은방 방향으로 이어지는 크지 않은 화단이 있었고, 화단에 바로 앞집 벽이 칸막이를 해주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짧은 통로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길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에 작은 수돗가가 위치해 있었다. 이어 오른편으로는 화단이 보이고, 화단 위에 꽃과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문 오른편 벽 쪽으로 화장실이 있었고, 화장실과 화단 사이의 공간은 개와 강아지, 닭과 병아리 등을 키우기에 적합했다. 그의 아내가 화단 가꾸기를 곧잘 하였고, 그 또한 시골에서 자라 꽃과 나무를 좋아했기에 화단은 사계절 내내 온기가 머물렀다.
마루 한 가운데 서서 화단을 내려다보자면 화단 중앙 앞쪽에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고, 주변으로 철쭉, 진달래, 그밖에 여자가 알지 못하는 식물들이 즐비하였다. 화단의 우측 편엔 그가 구해온 감나무를 심었고, 7살 여자와 나이가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지 접붙이기를 통해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맛난 홍시를 따먹을 수 있었다. 또 바로 곁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익어 벌어지는 무화과를 맛나게 따먹었다. 감나무 옆으로 향나무 한그루가 있었고, 그와 아내는 그 근처에 포도넝쿨을 심어 대문 위로 줄을 이어 시원하게 포도넝쿨 그늘을 만들었고, 또 7-8월이 되면 맛있는 포도를 따 먹을 수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위해 미니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며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여자가 기억하는 크리스마스는 풍족하진 않지만 포근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학령기 이전이었으리라. 추운 겨울날 그와 아내의 가게에 함께 있다가 그의 모친을 위한 따스한 카디건을 사기 위해 그의 아내는 해가 뒤엿뒤엿 질 때쯤 앞치마를 벗어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작은 여자의 손을 잡고 중앙시장에 갔다. 중앙시장은 어린 여자의 눈에 엄청 크고 화려한 곳이었다. 사람들도 많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코아백화점을 중심으로 앞쪽에 성당이 하나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상점들이 즐비하여 저마다 따스한 성탄절, 연말연시를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라며 빨간 옷,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종을 흔들어대며 지나가는 이들의 관심을 요구하였다. 백화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가고, 또 쏟아져 나왔다. 백화점 앞뒤로 갖은 행사들을 하며 수많은 물건들이 놓여있었고, 빅세일이라며 직원들은 외쳤다.
여자에게 백화점이라는 곳은 무시무시하게 크고,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다. 괜히 움츠러드는 곳이었다. 그의 아내와 작은 여자아이는 백화점 앞 신호등을 건너 성당 뒤편으로 이어지는 떡골목을 지나 옷가게가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몇 군데 옷가게에 들어가 꽃자주색 스웨터와 다홍색 스웨터.... 몇몇 가지를 둘러보고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아내는 구입했다. 작은 여자는 화려한 주변과 음악소리 등으로 황홀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아무도 환대해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아내의 발걸음은 무척 바빴다.
집에 도착하면 아내는 더욱 바빠진다. 흐트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쌓인 그릇을 치우고 곧장 저녁상을 준비하였다. 그와 아내는 버겁기도 했겠지만 가족을 위해 참고 버텼으리라. 곧 그가 집에 들어왔다. 따뜻한 저녁밥상이 오간 뒤 그와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탈지면 솜, 빨간색/초록색/금색/은색 반짝이와 리본, 장식볼, 전구 등을 이용하여 화단 가운에 떡 버티고 서있는 작은 소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다음날 아침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들처럼 크고 화려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흰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오빠와 동생과 함께 마당에 쌓인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화단 위 소나무 옆에 세워주며 기뻐했고, 달갑게 눈싸움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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