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평생 남의 집 머슴처럼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어릴 때 그곳은 개천 위를 지나는 다리를 중심으로 미허가 상점들이 즐비하여 자리 잡았고, 기억 속의 그곳의 이름은 약강이었다. 시장보다 작은 규모라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어른들과 택시를 타고 갈 때는 '약강다리'라고 하면 그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는 선을 보고 자그마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누나 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약강다리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가게자리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새벽 경매시장이나 큰 시장, 밭떼기 등을 통해 물건을 조달받아 판매하는 소매상, 채소장사를 하였다. 그 덕에 계절에 맞게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 먹이고, 과일을 사 먹이고, 생선을 사 먹일 수 있었다.
정수리에 희끗희끗 첫눈이 오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고, 댁까지 배달해주고 돈을 받아왔다. 특히 식당 같은 곳은 처음 거래를 트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외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금액이 꽤나 누적이 되어 수금을 하려 하면 돈 없어 줄 수 없다는 배짱 태도로 그와 그의 아내를 괄시하고 밀쳐냈다. 그렇게 떼인 돈도 따져보면 몇 백은 되겠지만 그와 아내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자신들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식들의 입에 들어가는 게 작은 기쁨이자 행복이었던 것 같다.
자녀 셋을 모두 정성껏 키워 내는 동안 시간이 흘러 약강의 상점들이 점점 줄어들고, 드나드는 사람도 줄어들어 규모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터미널 근처로 공항버스 승하차장이 들어서고 약강다리 주변으로 복개공사를 하여 공간을 사용할 예정이라며 시군구 지자체에서 약강 상인들에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한평생 그곳에서 자리를 일구고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시군구 지자체에서는 허가된 자리가 아니기에 보상이란 없다고 하였다. 그와 아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게가 허물어지던 그날 시원섭섭하였으리라. 또 생계유지를 위한 다른 방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리라.
그의 핸드폰에는 '일력회사'라는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새벽 이슬을 맞으며 일을 찾아 나섰다.
이제 나이가 들어 아내와 자신의 건강을 살피며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와 아내는 복용할 약의 개수가 많아지고, 병원에 가면 진단명이 하나씩 늘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채소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 팔이 부러져도 아들 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내와 자신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을 듣게 되었다.
그는 문득 자동차면허증 시험을 볼 때가 생각났다. 가방끈이 짧았던 그는 새벽 시장에 가서 사야 할 물건을 살 때에도 수첩에 목록을 적을 때 맞춤법이 어긋난 경우가 흔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 자동차면허증 시험이 이론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자동차면허증 시험 예상문제집이 밀려 찢어질 때까지 보고 이론시험을 치렀지만 합격이라는 것이 결코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칠전팔기가 다 무엇인가? 그는 9번 떨어지고 10번 도전하여 결국 커트라인을 넘긴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다. 아마도 생존을 위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지금의 도전은 그에게 두 번째 고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물론 그에게 생존을 위한 도전은 아니지만 또 다른 의미의 도전일 수 있겠다. 그는 수업을 들을 때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그러나 합격이란 것이 또 쉽게 그에게 오진 않았다. 짧은 가방끈 탓일까? 장사를 할 때에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용어들이 한글로 써있는 것인데도 참으로 낯설게 느껴진다 했다. 그리고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들었다.
그는 이제 곧 다시 재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중이다. 그런 그에게 끝없는 응원과 용기를 전하는 바이다.
아마도 내가 가진 목표에 대한 열정과 끈기, 노력하는 모습은 그를 닮은 것이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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