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대학에 가기 위해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아마도 그때가 그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직접 운전하여 고속도로를 타고 나왔으리라. 그는 몹시 긴장한 듯 보였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여자를 대학교라는 곳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신의 트럭에 여자의 짐을 싣고 대도시로 향했다. 그러면서 처제에게 미안한 듯 인사를 건네고, 여자를 위해 책상 하나를 사서 넣어주었다. 그는 또 한참 고민을 했으리라. 여자를 대학에 보내면서 자신도 아내와 함께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야 할지 말이다. 물론 그에게는 자식을 대학에 보냈던 또 한 번의 경험이 이미 있었으나 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아내와 함께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다시 시장에서, 천막으로 된 그들의 가게를 지켰다.
그는 간간이 여자에게 오는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었고, 여자가 집에 올때면 그날은 어김없이 고기반찬이었다.
새로운 여정은 여자에게도 설렘반 긴장반이었다. 여자에게는 아무도 대학생활이라는 것에 대해, 어떠한 직업이나 자리를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귀띔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여자는 친구들을 따라 대학생 흉내를 내느라 몹시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고, 철없이 그에게 손을 벌렸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비롯하여 허리, 무릎 등 모든 관절들이 닳아지는 고통도 달게 받으며 여자를 지지해주었다.
여자는 그렇게 졸업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바로 일선에 뛰어들었다. 월급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와 아내를 위해 빨간 내복을 사고, 오빠와 여동생을 위해 외투를 사고, 또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어 기뻤다.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막아줄까 그와 아내를 위한 두터운 외투도 샀다. 여자는 일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점차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 음식을 한껏 섭취했지만, 쉬는 날 낮잠을 자고 나면 체중이 더욱 줄었다.
그와 아내는 여자가 걱정되어 병원에 데리고 갔으나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자는 그와 아내를 위해 가수 이미자의 공연티켓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와 아내에게 공연시간을 신신당부하였다. 그와 아내는 밭떼기를 하여 장사를 하였고, 당시 대파 작업때문에 공연시작시간에 임박하여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온몸에 칠해진 흙을 씻어내고, 여자가 사주었던 따뜻한 외투를 입고 겨우 공연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십여분 전에 공연이 시작되어 입장할 수 없었다. 그렇게 로비 의자에 앉아 문틈사이로 들려오는 이미자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1부 공연을 놓쳤는데도 그와 아내는 여자에게 행복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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