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유치원이 끝나면 곧장 그와 그의 아내가 있는 시장으로 갔다. 유치원에서 배웠던 노래와 율동을 하며 재롱을 부리노라면 그와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곧장 손님들에게 응대했다.
여자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그와 아내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했다. 여자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게 버거워보였다. 여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곤 나중에서야, 나이가 들고난 후에야, 그의 아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나서야 그때 왜 남자가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릴 땐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는 듯 했다. 여자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야기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며 응원해주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없던 여자의 집에서는 적극적인 응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은 흘러갔다. 여자가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와 아내는 비싼 교복을 사주면서도 흐뭇해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자가 중학교에서 미술선생님께 재능을 인정받아 방학기간 학교에 나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에는 선뜻 반갑게 안아주지 못했다.
여자는 학교에서도 곧잘 적응하고 수업도 곧잘 따라가고 친구도 곧잘 사귀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아오면 그와 아내는 내심 기뻐하였다.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배달을 하다가 사고로 팔이 부러졌을 때에도 힘든줄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여자가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더욱 힘이 난다 하였다. 여자가 실장(반장)을 하게 되었다 말했을 때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잘 했다고 토닥여주고는 가을 운동회 때 그와 아내는 50여명이나 되는 여자의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응원한다며 가게를 잠시 비우고 그의 트럭에 아내와 함께 갓 지은 밥과 돼지불고기를 각각 한 다라씩 가져와 은박접시에 담아주었고, 학교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일화가 되었다. 여자는 선생님들과 일부 친구들에게 인정받아 용기를 내어 전교회장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경험이 있었다. 보잘것 없는 나를 응원해주고 함께 해준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그와 아내는 감사하다 말했다.
학교 교내 산문대회가 있던 날 여자는 고민 끝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어법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적었다. 그리고 산문대회 장원이라는 말과 함께 문법 수정 후 교내학지에 실린다 하였다. 여자는 그를 부끄러워했다는 마음이 들킬까 미안한 마음에 그와 아내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지나갔다. 몇 년이 흘러 대학에 다니며 알게된 사실이지만 산문대회 얼마 후 그와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 자주 들러 채소를 사가는 선생님 한분이 그와 아내에게 교내학지를 가져다주며 축하해주었다고 했다. 그와 아내가 가게를 접게된 그 날까지 여자의 산문이 인쇄된 교내학지는 가게 한켠에 달력과 함께 꽂혀있었다.
여자는 대학생이 된 후 한참만에 집에 가면 그와 아내의 얼굴이 주름이 늘어가는 것 같다. 여느때처럼 여자가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와 그의 가게를 갔을 때 그의 아내가 말했다. 어느 손님이 딸과 함께 가게를 찾았는데 교복이 낯익어 물으니 여자가 같은 학교였다고. 그리고 그의 아내가 여자의 이름을 말하자 손님의 딸이 아주 반기며 누군지 알고 있다고 말해 그와 아내는 잠시 행복했다고 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모친께서 큰댁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으로 모실지 집에서 모실지에 대해 옥신각신하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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