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다 보면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불쑥 던진 질문 하나가,
또 어떤 날은 잠들기 전 나눈 짧은 대화가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오래전 휴대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3년 전 기록해 두었던 한 장면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새벽 두 시 반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까지 한 시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
"엄마, 이제 밤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거야?"
"응"
"왜? 빨간색 주황색 노랑색 초록색 파란색 모두 다 감정색이 먹어버리는 거야? 검정색한테 다 먹혀?"
"아니 다른 색들은 모두 자고 있는거야"
"엄마 그럼 밤에는 검정색하고 하얀색만 나와?"
"응"
"엄마 그런데 나 검정색하고 하얀색만 나올때까지 여기 간지러워도 안긁고 참고 있었어"
"그래? 잘 했어"
"엄마 그런데 딱지가 상처가 딱지가 생기면 한번에 다 떨어져?"
"아니 그럴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고"
"엄마 그럼 딱지가 반으로 쪼개져서 떨어져?"
"응, 그럴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지"
"엄마, 그런데 나 너무 무서워. 어젯밤에 잘때 고대비 나왔어"
"고대비? 그게 뭔데?"
"고대비 있잖어, 그거 진짜 무서워. 진짜진짜 무서운거야. 지난번에 고대비랑 생쥐랑 싸우는 거 봤어"
"그래?"
"어, 그런데~ 엄마~ 아~ 나 어제 잘때 고대비가 나왔어. 꿈에"
"그래? 정말 무서웠겠다"
"어, 그런데 엄마 나 무서워 옛날이야기 해줘"
"옛날이야기?"
"어... 아무거나"
"의좋은 형제...사자와 생쥐..."
"엄마 그런데~ 나~ 어~ 어~ 비둘기와 생쥐 이야기 해줘"
"비둘기와 생쥐? 그게 뭔데?"
"그~ 있잖아. 나~ 비둘기와 생쥐 이야기 알아. 지난번에 엄마카투리에서 봤잖아"
"비둘기와 생쥐? 엄만 잘 모르겠는데?"
"어~ 그~ 어~ 왜? 있잖아~ 비둘기와 생쥐가 살았는데 생쥐가 물에 빠져서 비둘기가 구해주고 사냥꾼이 비둘기를 사냥하려고 하니까 생쥐가 사냥꾼 다리를 물었잖아~"
"아, 비둘기와 개미?"
"어? 어 비둘기와 개미 비둘기와 개미구나. 엄마 나 그 비둘기와 개미 이야기 해줘"
"그래 알았어"
그날 새벽 저는 졸음을 참아가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는 '언제 다시 잠들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새벽 한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이의 세상에는 밤도 색깔이 잠드는 시간이었고,
딱지도 궁금했고,
꿈속에서 만난 '고대비'도 정말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고대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른에게는 엉뚱한 질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겠지요.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예전처럼 새벽에 깨워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새벽의 졸음마저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몰랐습니다.
잠을 설치며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한 시간이,
훗날 오래도록 꺼내 보고 싶은 선물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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